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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이곳에서 생활한지도 열흘이 지났습니다.

참 기나긴 열흘이였죠.. 힘들게 몸을 이끌고, 오지도 않는 잠을 찾아 고통스럽게 지내던 밤도.. 이런저런 검사를 하러 다녔던 낮도.. 몸을 이끌고 가게 된 화장실도.. 자취방에서 집에 요양차 들렸다가, 집에서 급히 서울에 있는 병원으로 올라온게 딱 일주일이 지났답니다. 제 자취방에서 썩고있을 상추와 봄동은 주인집 아저씨께 치워주시기로했고.. 옆방 친구한테 카톡으로 방상태도 확인해달라고 부탁해놨네요.

그리고 지금 제가 서울에있나 천안에있나 당진에있나 어디에있나 구분도 못하고 산다는걸 확인했습니다. 저는 지금 서울바닥에 있지만, 그런것같지도 않은 이 느낌은..... 창살없는 감옥에서 살아가고있다는걸 확실히 알려주는 바 입니다. 그동안의 주말은 병문안의 러쉬가 이루어졌습니다. 많은 친구, 지인들이 이렇게 저렇게 병문안을 찾아오게 되었고.. 그럭저럭 이렇게 저렇게 이야기를 하고 지내다보니 주말은 꽤 빨리 지나갔습니다.(하지만, 전 앞으로도 많이들 오실거라 믿고있습니다..ㅠ)

월요일까지 병문안 행렬은 계속되었고. 오늘은 병문안 일정이 잡혀있는게 없습니다. 주말을 앞두고 다들 퇴원해서 비워있던 병상이 새로운 환자들로 가득 채워지게되었고, 지금도 609호 5인실은 모두 차있는 상태입니다. 병원에서 쭉 한주를 있다보니 어느정도 병원의 섭리에도 적응해나가는듯 해보이네요...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빨리 나가야할텐데..ㅠㅠ


오늘은 그래도 조금은 좋은 소식을 들고 왔습니다.

약 열흘만에 그동안 펴지 못했던 다리를 피게 되었습니다. 제대로 펴지지 않던 왼쪽다리가 펴지고, 병상에는 다리를 펴기 위한 이상한 도구까지 동원되었네요;;

월요일 아침회진때 의사선생님께서 제 다리를 사정없이 펴기 시작합니다. 아픕니다. 죽어라 아픕니다. 미치고 환장합니다. 참는데도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동안 느껴온 통증 그대로를 소리로 표현했더니만, 6층 병동 전체에서 구경거리가 났다고 구경들 나옵니다;; "난 아파서 그랬을 뿐인데.."

다들 제 아픔을 엄살로 치부해버리고... 여튼 한번 펴진 다리는 그 이후로 서서히 통증히 사라져 앞으로 펴는데에는 크게 지장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큰 지장은 없었으나 이상한 도구를 이용해서 이 상태를 유지하게 한다고해서 지레 겁을 먹게 되었네요.. 쇳덩이(추)를 달아놓는다기에 설마 수십kg의 어마어마하게 큰 추를 생각했던 제가 이상한거였지만 말이죠. 오전회진때 얘기가 나오고서 언제쯤 그 이상한 도구에게 발을 맏겨야 하는 상황이 올지 기다리다가 오후 4시쯤이 되어서야 이 괴상망측한 기구를 조립하기시작했습니다.

"지옥으로의 카운트다운이라니!!!!!!!!!! 이제 내발도 내맘대로 못움직이는구나!!!!!"

시설팀에서 나와 침대의 식판을 떼어가고 그자리에 봉을 하나 덧댄다음에 도르레와 함께 노끈을가지고 회진때 전문의 교수님을 졸졸 따라다니던 1,2년차 인턴이랑 레지던트 절차를 밟고있는 의사들이 열심히 조립을 합니다. 사실상 2년차가 1년차를 가르쳐주듯이 설명하면서 작업이 진행되고.. 1년차 인턴은 열심히 테이프나 붕대만 잘라줬는데 말이죠;;;;;


엄청나게 무거운 추는 아니였고, 한 1kg정도의 무게를 자랑하는 추 입니다. 1,2년차 초보의사들이 잘못 셋팅해놓은 상태가 위와 같지만, 제대로된 이용법은 내 발과 수평선을 맞추어야 합니다..

처음에는 편합니다. 하지만, 점점 있다보니 이것도 힘드네요.... 중간중간 빼고 또 끼고를 반복하고있지만, 그래도 언젠가는 누구의 도움 없이도 혼자 걸을 수 있는 날만을 위해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있습니다. 다음에는 혼자 걷게되었다는 소식으로 찾아뵙길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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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30세 도태남의 처절한 삶의 기록. since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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